리뷰. 서평★

대지의 아이들(전 2권)

현대문화 2005. 12. 8. 14:49
  미디어 서평


  

조선일보 2003년 07월 12일 (토)


[책마을] `대지의 아이들`(전 2권)-빌리온 셀러 선사소설



선사시대의 벽화를 소재로 한 이문열의 단편 “들소”를 대하소설로 바꾼다면 아마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참으로 거대한 상상력의 산물인 이 책은 60개국 28개 언어로 번역돼 무려 4000만부가 팔린 ‘선사(先史)소설’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분량은 1000페이지에 가깝지만, 이건 전 6부작 중 1부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현재 마지막 6부를 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3만5000년 전의 빙하기. 크로마뇽인인 주인공 에일라는 갑자기 일어난 지진으로 부모를 잃게 된다. 하늘 아래 혼자가 된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은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인 “동굴곰족”. 씨족의 약(藥)어미인 이자와 주술사인 크렙에 의해 길러진 에일라는 약초에 대한 지식을 배우면서, 부족의 전통을 깨고 사냥까지 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다.



돌팔매 줄만을 써야 했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사냥솜씨를 보여주고, 결국 완고한 동굴곰족의 남자들로부터 “사냥하는 여자”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그러나 장래에 부족의 우두머리가 될 브라우드는 계속 에일라를 괴롭히고, 에일라는 마침내 부족을 떠나 혈혈단신 벌판으로 향하게 된다. 에일라가 투석기와 바늘, 부싯돌과 철광석 등 혁신적인 발명품들을 통해 세상의 온갖 방해물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후속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동굴과 산과 초원의 환경, 부족들의 관습과 인간관계, 식물의 이용, 약제술과 사냥술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생활 묘사는 어느 곳 하나 얼버무리는 구석 없이 지루할 정도로 세밀하다. 덕분에 3만년을 뛰어넘는 옛 이야기가 시공을 뛰어넘어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냉혹한 자연과 완고한 관습이라는 두 가지 적에 맞서는 가운데 저항이 곧 생존의 동의어가 되는 주인공의 상황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화장하고 사치스런 옷을 입으며 술도 마시는 등 “너무나 현대적인” 원시인들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36년생인 저자 진 M 아우얼은 25세에 다섯 아이의 어머니가 된 뒤 뒤늦게 야간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회로판 디자이너, 기술서적 전문가로 활동했던 이색 경력의 작가. 44세 되던 해인 1980년에 첫 소설인 이 책을 내놓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집필 동기는 한 네안데르탈인 노인의 유골에서 비롯됐다. 반신불수인 이 노인은 늙어 죽은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를 평생 정성껏 보살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작가는 선사시대에도 동정심과 연민이 생존의 필수적인 감정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때부터 광범위한 취재가 시작됐다. 관련 도서를 섭렵하고 유적지를 답사하며 유명 인류학자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모자라 석기를 만들고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직접 체험’까지도 주저하지 않았다. 저자는 주인공이 여자인 것에 대해 ‘어렸을 때 읽은 동화에선 항상 남자가 주인공이었는데, 내가 여주인공이라면 남자와 함께 칼을 휘두르고 모험을 펼쳤을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말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