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삶의 풍경화)★

[스크랩] 어떤 선행

현대문화 2005. 11. 1. 12:44
 

      

   내가 십대였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 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표를 산 사람들이 차례로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매표소와  우리사이에는 한 가족만이 남았다.  그 가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비싸진 않아도 깨끗했고, 아이들의 행동에는 기품이 있었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부모 뒤에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아이들은 그날 밤 구경하게 될 어릿광대랑 코끼리, 그리고 온갖 곡예들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전에는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맨 앞줄에 서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신은 정말 멋진 가장이에요."  남편도 미소를 보내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역시 훌륭한 여성이오." 

   이때 매표소의 여직원이 남자에게 몇 장의 표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자랑하듯이 말했다.  "우리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표 여덟 장과 어른 표 두 장을 주시요."  

   여직원이 입장료를 말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어머니는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고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남자는 매표소 창구에 몸을 숙이고 다시 물었다. " 방금 얼마라고 했소?"  

   매표소 여직원이 다시 금액을 말했다.  남자는 그만큼의 돈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할 것인가.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에게 이제 와서 서커스를 구경할 돈이 모자란다고 말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이때였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말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몸을 굽혀 그것을 다시 주워 들더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시오, 선생.  방금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이것이 떨어졌소."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결코 남의 적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절망적이고 당혹스런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은 실로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20달러 지폐를 꼭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선생.  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로 큰 선물이 될 것이오."  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들은 곧 표를 사갖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아버지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당시 우리 집 역시 전혀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 서커스 구경을 못했지만 마음은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 댄 클라크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서


 
출처 : Episode |글쓴이 : 삶의 片鱗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