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무화과나무의 꽃

현대문화 2005. 11. 9. 18:45
 

 

  무화과나무의 꽃


                          박라연



나는 피고 싶다.

피어서 누군가의 잎새를 흔들고 싶다.

서산에 해지면

떨며 우는 잔가지 그 아픈 자리에서

푸른 열매를 맺고 싶다 하느님도 모르게


열매 떨어진 꽃대궁에 고인 눈물이

하늘 아래 저 민들레의 뿌리까지

뜨겁게 적신다 적시어서

새순이 툭툭 터져오르고

슬픔만큼 부풀어오르던 실안개가

추운 가로수마다 옷을 입히는 밤

우리는 또 얼마만큼 걸어가야

서로의 흰 뿌리에 닿을 수가 있을까

만나면서 흔들리고

흔들린 만큼 잎이 피는 무화과나무야


내가 기도로써 그대 꽃피울 수 없고

그대 또한 기도로써 나를 꽃피울 수 없나니

꽃이면서 꽃이 되지 못한 죄가

아무렴 너희만의 슬픔이겠느냐

피어도 피어도 하느님께 목이 잘리는

꽃, 오늘 내가 나를 꺾어서

그대에게 보이네 안 보이는

안 보이는 무화과나무의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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