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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여인의 포르노그라피 판파지 < 게이샤의 추억 >

현대문화 2006. 1. 18. 14:41
동양 여인의 포르노그라피 판타지 ‘게이샤의 추억’


ⓒ소니 픽쳐스


ⓒ소니 픽쳐스


ⓒ소니 픽쳐스

1997년 출간과 동시에 50주 연속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장식하는 대기록을 세운 아서 골든(작가 본인이 세계 최초 외국인 게이샤였다)의 원작소설 ‘게이샤의 추억’은 드라마틱한 성장담과 순애보적 사랑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으며 이후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글레디에이터>의 명제작자 더글라스 윅과 콜롬비아 픽쳐스의 에이미 파스칼 회장을 통해 처음 원작을 접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책을 읽자마자 직접 영화화 판권 계약을 서둘렀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게이샤의 은밀한 세계, 두 주인공간의 치열한 경쟁,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는 시공간을 뛰어 넘어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힘을 지녔다”고 평했으며 감독을 맡은 롭 마살 역시 “이 작품의 감동은 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 감수성에 기인한다”며 글로벌한 매력의 대작이 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기도 했다.

원작 소설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지 9년만에 할리우드의 황금손 스티븐 스필버그와 ‘시카고’로 작품상을 포함 2003년 아카데미 6개부문을 석권했던 롭 마살 감독의 손길을 거친 ‘게이샤의 추억’은 순제작비 8천5백만 달러(한화 약 900억)의 블록버스터로 다시 태어났다.

Who is Geisha?


‘예술가’란 뜻의 게이샤는 그동안 춤추는 기생으로 잘못 인식돼 왔으나 최근 일본 전통을 이어간 예술인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아름답지 않으면 게이샤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미적 결정체로 이루어진 게이샤는 당시 ‘살아있는 예술작품’으로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춤,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쳐 수년간 험난한 정식교육 과정과 견습 게이샤인 ‘마이코’ 단계를 마쳐야만 정식 게이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전통적인 현악기 샤마센 연주에 맞춰 안무를 선보이는 게이샤의 의상, 화장, 동작에는 예외 없는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었고 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듯 얼굴과 목, 어깨까지 하얀 분칠을 하고 눈, 코, 입술라인을 새로이 그려 넣는 방식의 독특한 화장술로도 유명하다.

춤출 때는 18kg이 넘는 가발과 복잡한 기모노를 차려 입고도 완벽한 춤을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입혀주는 장인 외에는 어떤 남자도 함부로 만질 수조차 없었던 게이샤의 기모노는 가장자리마다 화려한 수가 놓아져 있으며 바닥에 살짝 끌리는 밑단과 낮게 매인 오비(기모노 위에 덧매는 장식띠)가 매력적인 자태를 연출한다.

하지만 진정한 게이샤는 외모나 옷차림뿐 아니라 누구와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더라도 막힘이 없도록 해박한 지식과 화법도 갖추어야 했다. 게이샤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으며 미모와 재능, 열정이 더 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이기에 소설이나 영화화 작업에 매력적인 소재임은 분명하다.

일본의 전통 예술인 게이샤에 캐스팅 된 중국 여배우들

‘게이샤의 추억’이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 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주인공 ‘사유리’역 캐스팅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게이샤의 극적인 아름다움과 한 여성으로써 질곡의 삶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많은 여배우들이 탐내기도 했지만 아름다움과 영어 구사는 기본, 15세에서 30세까지 폭 넓게 소화 할 수 있는 연기력과 춤솜씨 등 만만치 않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 여배우들에게도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지만 결국 국제적 지명도와 역사적 이해관계 등이 얽혀 ‘와호장룡’과 ‘연인’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중국 여배우 장쯔이로 낙점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유리의 라이벌 ‘하츠모모’와 스승 ‘마메하’ 등의 주요 게이샤 배역 역시 공리, 양자경 등 중국 여배우에게 돌아갔다. 때문에 게이샤의 본국 일본을 비롯 역사, 외교적 문제로 일본과 감정이 껄끄러운 중국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장쯔이나 공리 모두 “여자로서 이번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밝히는 등 배우들은 영화 출연에 적극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장쯔이는 골든글로브상 드라마부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공리는 한니발’ 시리즈의 최신작인 ‘비하인드 더 마스크’에 캐스팅 되며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등 세계무대 진출에 교두보가 되고 있다.

6주간의 게이샤 사관학교


까다로운 캐스팅 관문을 통과한 여배우들은 ‘살아있는 예술작품’으로 불리는 게이샤를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가혹한 트레이닝 코스를 거쳐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롭 마샬 감독은 효율적인 수련과정을 위해 원작자 아서 골든의 컨설턴트로 활약했던 리자 달비를 섭외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게이샤로 살았던 리자 달비는 세 여배우들에게 6주동안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혹독한 게이샤 훈련을 시켰다. 세 여배우들은 완벽한 게이샤 연기를 위해 사마센 연주를 비롯 다리 사이에 종이를 넣고 머리에 사케를 따른 잔을 올려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워킹과 최대 20kg에 달하는 기모노 의상을 입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마스터하기도 했다.

특히 사유리 역의 장쯔이는 30센티나 되는 게다를 신고 어둡고 좁은 통로 위에서 춤추는 장면을 위해 매일 5시간씩 따로 춤연습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4계절 컨셉의 4가지 초대형 세트

롭 마샬 감독은 낯선 시간대와 신비로운 게이샤의 세계를 영상화 하기 위해 10여명의 제작진을 구성 일본 현지 로케이션 헌팅을 통해 4만여장의 사진을 찍어 온다. 이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벤츄리 카운티에 14주에 걸쳐 13km에 달하는 ‘하나마치’ 거리를 재현하고 일본의 4계절 배경을 담기 위해 직접 일본의 벚꽃나무, 대나무, 삼나무 등을 공수해 왔다.

또한 실크로 2500평에 달하는 하늘을 가리는 실크 라이팅 조명기법을 통해 교토지역의 평온한 햇살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덕분에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인공적인 느낌도 있지만 비주얼적으로 상당히 화려한 색감과 영상을 보여 준다.

동양여인에 대한 포르노그라피적 판타지

이 영화는 서구적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의 게이샤다. 하얀 화장에 붉은 입술, 긴 검은 머리와 기모노 안에 감춰진 작은 체구. 그들이 꿈꾸는 신비한 동양여인에 대한 포르노그라피적 판타지. 근본적으로 이러한 시선을 거둘 수 없기에 왜색 짙은 게이샤의 이야기는 신비롭지만 무국적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사유리란 질곡 많은 한 여인의 삶이 예술인으로 지칭되는 게이샤이자 사랑을 선택 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성을 모두 품었지만 캐릭터의 내면적 갈등이 살아나지 못 하면서 화려한 영상속 이미지로만 각인된다. 시각적 화려함과 더불어 시대적 풍자와 유머가 적절히 배합된 롭 마살의 전작 ‘시카고’의 완결성을 생각하면 제법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그러나 공리를 비롯한 중국 배우들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세 배우 모두 서로 간 유기적 관계를 깨트리지 않으며 각자의 개성대로 빛을 발한다.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