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여 그날처럼 오늘이여 그날처럼 유안진 오늘 내리는 봄비로 새닢 촉트듯이 오늘 우는 눈물로 움트거라 옛사랑아 마침내 석자 이름을 불러내고 마침내 한줄의 주소를 떠올려라 비로소 뜨겁게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 비로소 멋적게 말문 여는 봉합엽서 사랑아 그날처럼 앞질러 와 서 있거라 철 일러 핀 꽃처럼 저 쯤 .. 애송시★ 2005.11.12
엽서, 엽서 엽서, 엽서 김경미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 년 혹은 이 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는 밑에.. 애송시★ 2005.11.12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 애송시★ 2005.11.12
여수 여수(旅愁) 허민 산비둘기처럼 두려움을 한가닥 지니고 낯선 산천을 굽이 돌아나가면 흔한 인정치고 하나나 반겨주는 이 없고 머무는 곳마다 맘은 수줍어 머리를 숙이었노라 어린 시절에 품었던 대동강을 벌써 보내고 사투리 다른 곁에 손이 창을 들여다보니 산도 고울세라 들도 사랑할세라 가을 저.. 애송시★ 2005.11.12
엄마 걱정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 애송시★ 2005.11.12
얼 굴 얼 굴 박인환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 애송시★ 2005.11.12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안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 애송시★ 2005.11.12
어머니 어머니 이동순 어머니와 내가 모자간의 인연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았던 시간이란 고작 열 달 무슨 볼일 그리도 급하셔서 어머니는 내가 첫돌도 되기 전에 내가 땅에 두 발을 딛기도 전에 서둘러 가신 것일까 애송시★ 2005.11.12
애 가 애 가 - 이 창 대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막히는 이별은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는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워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 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 .. 애송시★ 2005.11.12
안 개 안 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애송시★ 200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