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안개 온갖 배암들이 무리지어 춤추는 저녁 그녀에게서 온 전화 <저 - 시집가요> 한 마리 꽃뱀이 목을 타고 내려와 나의 심장을 <후득> 물어 뜯고는 잿빛 거리로 너훌거리며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언제 적어둔 것인지 아주 오래된 노트에서 발견했는데 작가의 이름을 모르겠어요. 혹시 아.. 애송시★ 2005.11.12
아침식사 아침식사 프레베르 그는 잔에 커피를 따르고 그는 커피잔에 우유를 붓고 그는 우유 넣은 커피잔에 설탕을 넣고 작은 스푼으로 그는 저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내게 말 한마디 없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는 담배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고 그는 재떨이에 재를 떨.. 애송시★ 2005.11.12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아이들은 황야 위에 허수아비를 세운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어두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언젠가 이 위기의 빙벽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사라지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다시 오는 새벽의 빛을 위하여 슬픔 속에서 맞이하는 기쁨을 불태우기 위하.. 애송시★ 2005.11.12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쉘 실버스타인 “내 가지들이 다 떨어져서, 이제 넌 그네를 탈 수 없게 되었어.” “그네를 타기에 난 너무 늙었어.” “내 줄기는 베어져서, 이제 넌 오를 수가 없게 되었어.” “줄기를 오르기에는 난 너무 피곤해.” “미안해, 난 너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은데……” “지금.. 애송시★ 2005.11.12
신심명 신심명(信心銘) 승찬 스님 둘은 하나로 비롯되는 것 하나 또한 지키려 하지 말라 한 생각이 일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으리 차별하고 선택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 자체는 어려움이 없다 미움도 사랑도 없으면 도는 통연히 명백하리라 너는 나로 인해서 존재하고 나는 너로 인해서 존재한다 둘 다를 .. 애송시★ 2005.11.12
신 록 신록(新綠) 서 정 주 어이할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 애송시★ 2005.11.12
식 구 식구 구광본 늦은 밤에 모여 앉았습니다 수박이 하나 놓여 있고요 어둠속에서 뒤척이는 잎사귀, 잠 못드는 우리 영혼입니다 빨갛게 익은 속살을 베어물 때마다 흰 이빨이 무거워지는 여름밤 얼마나 세월이 더 흘러야 할까요 넓고 둥근 잎사귀들이 퍼져나가 다시 뿌리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까지는요 .. 애송시★ 2005.11.12
시인의 기도 시인의 기도 이대근 나의 시가 아직 으스름달도 시퍼렇게 알몸인 새벽 부지런한 조롱박에 떠올린 첫 우물물이게 하소서 나의 시가 숨가쁜 단풍잎 너머 졸고 있는 산 위에 진한 피를 흘리우는 석양보다 더 붉은 참회이게 하소서 내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뽑아 단 한편의 시를 쓰게 하시되 그 시.. 애송시★ 2005.11.12
시 경 시 경 소치는 사람이 채칙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돌아가듯 늙음과 죽음도 또 그러하네 사람의 목숨을 끊임없이 몰고 가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둠 속에 덮여 있구나 그런데도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투성이 이 몸을.. 애송시★ 2005.11.12